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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알레르기

February 28th, 2007

나 원래는 태극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최소한 태극기를 보는게 불편하진 않았었지. 학교에도 교실마다 걸려있잖아.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걸려있고, 우리나라는 태극기가 걸려있고. 한달에 한번인가 조회도 하잖아. 운동장 아니 연병장 사열대 앞에 줄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하고, 교장이 하는 말 들어주고. 나라에는 충성해야 되는 줄 알았지. 몸과 마음을 바쳐서-.

군대 갔더니 아침저녁으로 태극기를 향해서 경례를 해야 하더라고. 처음에는 그것도 너무 좋았지. 막 구르다가도 애국가만 나오면 잠시 쉴 수 있었으니까. 나중에는 조금 귀찮을 뿐이었어. 바깥에 있으면 그 시간엔 잠시 정지해줘야 하니까 여간 귀찮은게 아니지. 그래서 이래저래 짱구를 굴려서 항상 실내에 있으려고 노력했지. 준비음악 나오면 막 뛰어서 내무실로 들어가고 말이야.

어느날 내무실에 누워서 비됴를 보는데, 박정희가 살던 시절의 얘기였어. 근데 비됴속에서는 바깥세상도 아침저녁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하는거야. 동네마다 애국가 울려퍼지고, 골목길 가던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손을 대고 정지화면으로 서있더라고. 몇몇 철없는? 애들은 여전히 뛰어다니고 말이지. 그걸보는 순간 숨이 막히더라고. 저런 시절을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그렇지만 순간 화면밖의 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 짓을 하면서 난 순종적인 사람으로 키워질 수 있었던 거야. 나라가 하는 일은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깔리는 거지.

2006년엔 월드컵이 있었잖아. 축구 하는 것도 좋아하고,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월드컵은 좀 짜증이 났어. TV 틀면 그것밖에 안나오니까. 언론에서는 항상 ‘사천팔백만 붉은악마’라는 말을 썼었드랬어. 나는 붉은 악마 아닌데, 붉은 악마는 사철칠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이라고 정정보도를 내달라는 요청을 해야 하나 고민했었드랬지.

정작 월드컵이 있었던 독일에서는 하루에 한 방송사만 월드컵 방송을 했었데. 그 외에도 신기한 소식들이 많았지. 모두 알겠지만 토고 대표팀은 수당 때문에 나라를 상대로 파업을 하기도 했었고, 일본선수 나카타는 자기는 훈련과 경기는 함께 하지만 합숙은 할 수 없다며 개인숙소를 따로 잡았지. 우리나라와 스위스와의 경기가 있던 날 한 쪽 볼에는 스위스 국기를, 한 쪽 볼에는 태극기를 페이스페인팅하고 응원을 나온 스위스 여자도 인상적이었어. 심지어 독일사람들은 나치라는 안 좋은 추억 때문에 자기나라 국기를 공공장소에서 흔들거나 하는 행위는 매우 드믈었데.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지. 나라를 위해 응원해야 하니까. 태극기를 들고 응원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주변인에게도 애국바이러스를 퍼트리는거지. 애국심이 매우 중요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거야. 나라를 위해 가족과도 헤어지고, 개인의 자유도 거의 없는 단체생활을 하는 축구선수들은 정말 불쌍한 것 같아. 그래서 외국감독들이 우리나라 선수들을 좋아한다나? 자신을 위해 운동을 해야지, 언제부터 나라를 위해 하게 됐을까?

아무래도 월드컵은 지구를 분할통치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각자 자기네 나라를 무리없이 다스리기 위해 국민들의 충성심을 배양해 나가는 쇼인 것 같아. 우리나라는 그 쇼로도 모자라서 프로축구 경기에서도, 프로야구 경기에서도, 애국가를 부르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잖아.

내일은 삼일절. 빨간날이라 좋지만 전국적으로 태극기 다는 날이라 나는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어볼까 하고 있어. 그런데 이게 왠일. 정통부와 한국소프트웨어 진흥원에서 사이버 태극기 달기 운동을 한데. 미니홈피, 블로그, 카페 등에도 태극기를 달라는 거야. 정통부 사이트에서도 이미지와 동영상을 받을 수 있고, 각종 포탈사이트에서는 아이템으로 내려받을 수 있다나.

알레르기가 있는 나로서는 내일 하루동안은 인터넷과도 안녕해야겠어. 너는 아직 태극기 괜찮니?

Tags: 국가, 국가주의, 삼일절, 알레르기, 월드컵, 정통부,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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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Responses to “태극기 알레르기”

  1. comment number 1 by: tangul.com

    태극기 게양, “애국심 발로” vs “강요 말아야”

  2. comment number 2 by: 마음속을 달려

    삼일절 ‘인터넷 태극기 휘날리며~’

  3. comment number 3 by: MoveOn21.com

    국기게양 논란은 결국 정체성 논쟁

  4. comment number 4 by: 죽음의반지

    쩝쩝..나라를 위해 독립을 외치다 처참하게 순국하신 모든 독립열사님들 보기 부끄럽다..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가 않다.
    이런걸로 논할 가치도 없어보인다.

  5. comment number 5 by: 나도..

    나도..태극기 알레르기생겼어..
    근현대사과목을배우면서 여러가지사진을 보고 그때부터 알레르기가 생긴것같아.
    황국신민서사를 외우는 모습을 보고 와 어디서 많이 본모습이 생각나드라
    국기에대한 경례말이야

  6. comment number 6 by: 부국강병

    이런 쓰레기 같은 놈…
    미국놈만 보아도 우리보다 더했으면 했지 못하지 않다.
    정말로 멀이에 된장만 들어 있군!
    정말로 머리는 장식품이 아니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당신 같은 놈들이이 있었기에 나라를 잃고 고생했던 거야…

  7. comment number 7 by: ㄴㄴ

    된장도 아깝다…똥만 들어있는~

  8. comment number 8 by: 바리

    저도 태극기 알레르기 있어요. 그런데 우리 건물 1층 어린이집에선 벌써 애국가를 가르치는듯… -_-;

  9. comment number 9 by: su

    역시 교육은 안 좋아

  10. comment number 10 by: 정상인

    외국 선수들도 상당수 뛰는 국내 프로농구 리그에서 왜 경기 시작 전에 거룩하게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까..가끔은 그놈의 태극기 하나 내려서 박박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젖는다…

  11. comment number 11 by: 채경★

    저도 초딩때, 길가다 멈춰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세대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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