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짜리 인권
대학생 7명이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이유로 학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300만원. (기사링크) 학교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학교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 학생들의 인적사항을 파악 · 관리해왔고, 그 정보들이 담긴 문서를 학교직원이 버려서 쓰레기통에 나뒹굴다가 총학에서 발견. 문서에는 주민번호 · 보호자 정보 · 학적부 등 의 개인정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인권침해─나는 이 말을 좀 싫어한다.
‘침해’라니, 마치 인권이란 자명한 것이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만드는 말. 그래서 지금을 뭔가 결핍된 상태로 만들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운동으로 만들어버리는 말. 인권은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한 번도 없었던 것일텐데─인권이 침해당했다고 인권단체가 와서 조사하고 싸워서 회복시켜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 없는 사람 스스로 외치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회복의 ‘기술’이 아니라, 창조의 ‘정치’.
또, ‘인권침해’라고 말을 접합으로써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그래서 당사자들이 어떤 감정의 골을 지나왔는지, 지금은 어떤 상황인 것인지, ‘인권침해’라는 말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사람人에 대한 말이면서, 정작 사람은 들어있지 않은 말. 모든 사건은 다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나온 사람들도 모두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을텐데, ‘인권침해’라는 말은 그들 모두를 대충 같은 것으로 만든다. 누구에게나 입힐 수 있는 헐렁한 옷 같은 느낌.
되돌아보면, 현장에서는, 사건의 중심에서는, 아무도 ‘인권침해’라고 말을 시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언제나 뒤늦게 온 사람들이 헐랑한 옷을 입히고 싶을 때, ‘인권침해’라는 말로 포장할 뿐이다. 실제로는 그것이 지시하는 바가 별로 없으니, 언제나 ‘심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아무튼, 오늘은 대학생 7명이 자신들이 당한 인권침해가 3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헐렁한 옷에 사이즈라도 달아주고자 했던 것일까? 그들이 당한 “인권침해”와 “심한 정신적인 고통”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사실 알기가 더 어려워졌고), 아무튼 그것이 대략 3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은 오늘 인상에 남았다.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건 이 싸움은 시작부터 진 싸움이다. 파업을 한 노동조합을 업무방해라고 고소하는 기업이나,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개인을 대상으로 소송을 거는 국가나, 촛불집회를 한 시민들에게 광장의 잔디를 손상시켰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서울시나,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학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학생이나, 다 똑같다. 모든 것이 법과 개인, 그리고 비용으로 환산되는 시대. 저항은 이 시대에 균열을 내는 것이지, 이 시대 위에서 ─그것을 공고히 하면서─ 똑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이 싸움은 시작하면서 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