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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정치

by moya on June 1st, 2010

삶=정치

살아간다는 것은 정치한다는 것이다. 무인도에 혼자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아니 무인도에 혼자 살아가더라도, 살아간다는 것은 ‘나’라는 경계 밖의 타자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그 자체로 정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집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은 정치 중의 정치가 아닐까. 설거지 하나를 하는 것도 정치일 수 밖에 없다. 근데 여기서 정치가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삶=정치’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 등식을 은폐하는 몇 개의 공식이 있다. 우선 ‘정치적 동물’이라는 언표. 이 말은 마치 삶은 중립적이고 스스로 가능한 것처럼 신비화한다. 먼저 삶이라는 것[동물]이 있다. 그리고 정치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정치를 하는 것이 인간이다. 반대편에서, 정치에 삶을 종속시키는 사고방식이 있다. 왜냐하면, 정치가 삶을 만들어내는 권력의 역사가 계속되어왔고, 거기에 저항하기 위해서 혁명가들은 정치에 모든 삶을 걸었던 것이다. 정치가 삶을 만드니까, 삶은 정치를 장악할 때 내 것이 된다. 이 고리타분한 운동에서 삶은 찾아보기 힘들다. 항상 ‘정치적 올바름’이 내세워지면서 각자의 삶은 혼자서 몰래 평가하며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양자 모두에서 정치와 삶은 분리된다. 모든 행위는 순수한 욕망이거나 불순한 목적일 뿐이다.

하지만 내게 삶은 언제나 정치였고, 욕망과 목적은 분리되지 않았으며, 삶과 운동은 같은 표면에 존재해왔다. 또 누구든지 ‘삶=정치’라는 공식을 떠올리며 살아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정치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와 트위터는 매우 정치적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정치를 포기하는 행위로서 선거를 생각해왔던 것이다.

선거

그런데 촛불시위를 경험하고 이번 지방선거를 맞이하면서, 약간은 생각이 달라졌다. 아니, 달라진 것은 없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선거도 훌륭한 정치행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3월에 보았던 <하비밀크>라는 영화가 내게 어떤 감응을 남겼던 것 같고1, 그 전에는 광화문에 촛불 들러 나간다는 생각으로  주경복에게 한 표를 던지러 먼 길을 가던 경험도 있었다. (주소지가 딴데라서 :) 이번 지방선거가 정치로 느껴지는 것도, 누군가가 당선되어서 그가 나 대신 ‘정치’를 해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우리를 우회하여 진행되고 있는 변화들 ─ 특히 우리 삶과 그 조건들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정치’들을 고발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을 때, 이 선거는 살아있는 정치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번 선거 또한 정치를 죽이는 ‘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에 또한 선거 이 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치는 계속되어야 한다. 또 그래서 나도 하나의 정당을 선택해서 활동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거나 집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삶들과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러므로, 나의 삶과 분리된 ‘정치’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의 삶정치로서 정당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이와 동시에), 2년 뒤에 있을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내가 또 참여하게 될지 어떨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유시민과 심상정

선거를 시작할 즈음에, 어떤 친구가 내게 ‘단일화가 될까?’라고 물었는데, 뭔가 ‘선거=단일화쇼’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했었다. 정책과 공약, 정당과 인물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단일화만이 질문되는 씁쓸한 현실. 결국 지난 주말, 심상정이 경기도지사 후보에서 사퇴하며 유시민을 지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경기도민도 아니고, 두 사람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뭐, <항소이유서>의 유시민도 알고 있지만 옛날 얘기일 뿐이고,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며 성폭력 사건을 묵살하고 넘어간 정치인 유시민과,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며 의료보험 1종 환자들의 무상의료를 없앤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으로서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심상정은? 촛불시위 거리에서 만났을 때, 칼라TV 앞에서 약간 쇼하는 분위기를 연출해서 ‘이런게 정치인인가’ 생각했던 비호감도 살짝 있지만, 훌륭했던 국회에서의 활동과 신뢰할만한 진보정치인으로서 기억한다. 무엇보다 지난 번 대선 때 그가 민노당 후보로 나왔다면, 투표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봤었을 것이다.

서울사는 내가 경기도지사 선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주 4대강 저지농성이 한창 진행중인 팔당 두물머리에 자전거로 다녀오면서이다. 두물머리는 지역 사람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4대강 삽질이 시작되지 못하고 있는 사업지구이다. 이 후 예상되는 절차는 이렇다. 아직 공사와 보상을 위한 현장측량이 진행되지 못했는데, 이 측량을 위해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다. 지난 번에도 한 번 투입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주민들의 저항으로 측량을 저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선거가 진행 중이라 잠잠하지만 선거가 종료되면 바로 공권력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때 가서 막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강제로 측량이 진행되고 나면, 그 다음 절차는 행정대집행이다. 강제로 부수고 철거하고 쫓아내는 것이다. 특히, 행정대집행이 진행된다면 그 막대한 비용을 주민들에게 청구하기 때문에 행정대집행까지 실제로 저항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2 근데 이 행정대집행을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이 지자체장, 즉 경기도지사에게 있다.3 그래서 그 곳 사람들에게는 이번 선거가 삶이 걸려있는 중대한 사건인 것이다. 애초의 정치적 성향도 그런 것 같긴 하지만, 4대강을 죽이는 삽과 콘크리트가 삶을 통째로 매장시키려는 위기 앞에서 모두 유시민에게 한 표를 호소하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경기도민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때부터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왔던 질문이다. 팔당에 가지 않았었다면 당연히 심상정을 뽑았겠지만, 그 이 후에는 고민이 복잡해졌다. 팔당에서의 그 삶들, 그 보드라운 흙과 생명들, 그리고 4대강 사업 전체를 균열내는 것에, 경기도지사 선거가 하나의 중요한 마디가 아닌가하고. 4대강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한 표를 호소하던 팔당의 그 목소리가 계속해서 내 안에서 웅얼거리고 있다. 심상정 후보가 사퇴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이 하나의 정치를 보고 유시민을 찍었을 수도 있다. 함께 갔던 친구들과 나는, 누가 되던 우리가 싸워서 저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말이다.

심상정은 고뇌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나는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그녀가 팔당과 함께 싸워왔으며 그들과 함께 호홉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상정은 팔당에서 어떤 말을 듣고 나누었을까?4 또 경기도의 여러 다른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을 것인가? 나는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는데, 표를 받는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가 자신과 진보정치와 이 시대에 ‘어떤 정치가 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얼마나 무거울 것인가. 알 수 없는 그 고통을 짐작만 해 볼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주말을 힘겹게 보낸 진보신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분노도 나는 가늠하지 못한다)

상황이 어떻게 되던지 간에 나의 고민은 나의 고민대로 정리하면 좋겠지만, 생각이 미처 정리되지 못하고 이대로 투표의 시간이 닥친다면, 나는 유시민에게 한 표를 행사할 것 같다. 물론, 난 경기도민이 아니라서 가상일 뿐이지만.

나의 한 표

나는 지금 용산구에 살고, 투표소는 집에서 5분 거리이다. 내일 아침 일찍 표를 행사하러 갈 것이다. 지난 주 금요일이 되서야 도착한 공보물을 2시간 공부하고 나서야(나름 재미도 있었고, 그것들을 꼴라쥬하면 정말 살고 싶은 우리동네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나름의 이유로 한 표 한 표를 결정했다.

  •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
  • 용산+@ 교육의원: 최보선
  • 서울시의원: 문광덕(민주당)
  • 용산구의원: 남기문(민노당) or 황혜원(진보신당) //고민과 토론이 좀 더 필요, 좋은 의견 있으면 주세요.
  • 서울시장: 노회찬(진보신당)
  • 용산구청장: 성장현(민주당)
  • 서울시 비례대표: 진보신당
  • 용산구 비례대표: 진보신당

이 포스팅은 투표 전에 ‘나에게 선거란 무엇일까?’  한번 정리하고, 또 내가 지지하는 후보들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겸사겸사 포스팅 해야겠다 생각만 해오다가, 민노씨의 심상정 사퇴에 부쳐 에 자극받고 촉발되서 쓰는 포스팅이다. 고맙게도 이 블로그를 기억하고 언급해주셔서 :) 또 심상정에 대한 분노와 공격 속에서, 나 또한  하나의 삶과 생각으로 개입하고자 쓰기도 하였고. 그래서 가능하면 여기저기 트랙백이나 덧글로 엮어볼 계획이다.

  1. 게이운동을 하기 위해 선거에 뛰어든 그는, 때론 나쁜 의미에서 ‘정치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삶과 선거에의 참여 전체가 아주 훈늉한 정치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2. 대추리 행정대집행 모습: 오마이 기사, 이 후 경찰은 행정대집행 비용 2억원을 주민들에게 청구한다 []
  3. 게다가 “4대강 사업 권한은 중앙정부에 있지만, 지방단체장들이 법적-행정적 절차를 밟아 환경영향평가의 재조사와 준설토 적치장 거부 같은 수단방법을 통해 사업을 지연시킴으로써 사실상 중단시킬 수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93311&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6 []
  4. 트랙백을 걸다보니 그녀는 사퇴기자회견을 하기 이틀 전에도 팔당에 있었다. http://minsim.or.kr/blog/191 []

From → 깊은생각

6 Comments
  1. 앗, 느무느무 반갑습니다. :)
    글이 그야말로 진수성찬이고만요.
    앞으로 종종~~ ^ ^ 대화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지붕킥 해리버전)

    추.
    저도 [밀크]는 꽤 인상적으로 봤던 영환데..
    우리나라에도 밀크 같은 이들이 많아지만 참 좋겠네요.

  2. 앗, 이건 완전 실시간 댓글인데요 :) 네, 블로그를 가꾸면서 RSS리더도 다시 애정을 쏟으면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ㅋㅋ 점점 오프라인형(?) 인간이 되어가는 듯. 아무튼 오랜만입니다요─

  3. 각주 기사를 이제사 읽어보니 대추리에서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저 개인적으론 파병과 함께 노무현 정부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줬던 사건이었죠.
    지인들과 함께 대추리에도 여러번 가서 콘서트도 보고, 활동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는데… 정말 이 기억도 이젠 희미해져 가네요… 저도 참 많이 달라진 것 같고요…(갑자기 센치모드..;;; )

  4. 흑, 그래도 그 때 총리로 있으면서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했던 한명숙은 잊을 수 없죠. 지난주엔 인권영화제에서 대추리 영화 두 편을 봤어요. 평택 미군기지 계획은 2015년 이후로 연기되었더군요. 그 때 뭘 그리 서둘렀었는지.. 어쨌든 기억할 수 있도록 영화도 남고 해서 그나마 다행.

  5. 경기 북부 어름에서 주소지까지 투표를 위해 가던 중 중간기착한 곳에서, 잠시 웹서핑이나 하자고 파폭을 열었다가 님의 ‘수동트랙백’을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정치적 인간’은 정체(政體) 즉 국가가 전제된 안에서 창출되는 인간형이죠. 이것을 삶 자체로 확장시키는 것이 삶의 정치고,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제 글에서도 한탄했듯이 정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소위 진보가 부족한 점은 바로 생활이라는 것을 정치로 연관시키기 위한 적극적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의 미덕조차 없었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내내 반성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반성의 강도가 나아질 기미가 없네요.

    ‘투쟁’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대중적 비호감은 좀 더 고민해야할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 다시 삶 자체를 정치로 승화시키기 위한 방법은 투쟁밖에 없다는 걸 절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6. 투표하고 해남에 다녀오느라 이제야 덧글을 다네요. 버스에서 개표방송 내내 지켜보았지요. 용산에서 오세훈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경기도에서도 4대강 개발지역만 기초단체장들이 한나라당으로 당선되는 것도 지켜보았습니다. 당선된 도지사들이 4대강 사업을 방해/중단할 수 있다는 주장에 정부에서는 “지역에 돌아가는 경제적 이익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을 하더군요.

    사실, 신자유주의와 싸운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불리는 어떤 집단이나 우리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세계화/FTA 따위와 싸운다기 보다, 그냥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과 싸워야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투쟁이고 삶의 정치인 것 같습니다.

    그 동안의 경멸에 비해 이번 선거를 약간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선거가 하나의 바둑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선거도 하나의 바둑알이고, 유시민도 심상정도 하나의 바둑알일 뿐. 당선된 김문수도 하나의 바둑알이겠지요. 정작 ‘바둑두는 사람’은 나였던 것을. 그리고 이제 김문수라는 바둑알을, 또 다른 지역에서 당선된 바둑알들을 어떻게 압박하고 움직일 수 있을지 그리고 또 버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해야겠지요. 올해 여름은, 팔당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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