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사람과 개발자
개발자의 전화
나는 개발자. 오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홈페이지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는 문의. 도메인을 물어 홈페이지를 열어보니 내 컴퓨터에서는 열리지도 않는다. 악성코드가 심어져 있다는 메세지만 달랑.
“해킹 된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그럼 어찌해야되나요?”
“─.─ 일단 제가 한 번 살펴볼께요.”
코드를 검사해보니 문제가 되는 파일이 몇 백개는 되는 것 같다. 감염된지도 벌써 몇달된 듯, 제대로 된 백업본이 남아 있을리도 없다. 한시간은 걸릴 것 같은 작업량.
“3~4시간 정도는 작업을 해야 복구가 될 것 같아요. 그것도 이전처럼 완벽하게 복구가 될 수 있을지는 더 살펴봐야되구요.”
“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괜시리 걸리는 시간을 뻥튀기 해본다. 이제 막 오늘 계획했던 나의 일을 시작하려던 참이였는데, 나의 시간이 침범당한 것 같아서 못된 심보가 발동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누군가가 당신의 전화 반대편에서 어떤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시위로서.
한시간의 작업으로 왠만한 것은 다 걷어낸 것 같은데, 이상하게 홈페이지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평소와는 뭔가 다른 케이스. 코드를 더 꼼꼼히 살펴보고, 구글링을 하기 시작한다. 문제가 꼬이기 시작하면 해결하기 전까지는 좀처럼 물러서지 못하는 개발자들의 성미.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몇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파일 하나를 삭제하자 그제야 나타난 홈페이지.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시민모임”이라고 써있다.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개발자
사실 처음에 전화를 받으면서도, 어느 단체의 누구인데 어떤 홈페이지 때문에 전화를 했는지 서로 확인을 했던 것 같다. 그래, “일제고사”라는 말도, “해직교사”라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때는 그냥 ‘문제가 있어서 전화를 건 사람’과 ‘할 일이 쌓여있는데 이 전화를 받고 무언가 해결해줘야 하는 개발자’의 관계만이 있었고, ‘일’은 그렇게만 진행되었다. 4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일제고사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이고,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또 우리는 왜 그렇게 관계를 맺지 못하고, 전화로만 연결되어 무언가 문제가 있어 부탁하는 사람과 약간의 불평불만과 함께 또 하나의 업무를 기계처럼 처리하는 개발자의 관계로만 만났을까. 단추는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것일까.
나는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개발자이다. 그러나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개발자이지는 못하다. 그 둘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헉 ㅠㅠ 사이트 고쳐달라고 급하게 부탁드렸던 입장에서 좀 죄송…하네요. 사실 활동가들이 웹 기술도 그렇고 디자인도 그렇고 좀 거기에 들어가는 노고들에 대해서 잘 느끼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 제가 전화를 걸었던 사람인 것은 아니고;; 일제고사 반대 서울시민모임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_@
앗, @.@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작업을 하면서 약간 ‘업무’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거여요. :)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저는 승욱이여요. 방가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