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언론과 블로그

by moya on December 15th, 2008

언론 그리고 대안언론

언론이란 무엇인가? 언론은 “대리하여” 보고 말하는 자이다. 나를 대신하여 사회 곳곳의 사건들을 포착하고 추출하여 ─추상화하고 객관화하여, 즉 신비화하여─ 전달한다. 언론이 나를 대리할 때 나는 “눈멂과 실어”를 당한다. 정치인들이 나를 대신하여 결정할 때 나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의 눈과 입인 언론은 우리의 인식과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제[감각기관] 그 자체이다. 언론이 작심할 때 사회는 그 쪽으로 나아간다. 조중동과 함께 나는 피곤하다.

조중동에 맞서서 다른 말을 외치는 언론들이 있다. 대안언론[개혁언론]은 조중동과 다르게, 혹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나를 대리하여 보고 대리하여 말한다. 그것이 언론이고, 그들이 대안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때 그들은 다만 언론의 대안일 뿐이다. 대안언론 아래서 나는 여전히 보지 못하고, 말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조중동이건 대안이건 그들이 언론일 때, 그것은 언제나-이미 권력의 한 부분이다. 눈과 입을 가진 자로써 눈과 입을 빼앗긴 자들 위에 군림한다. 나는, 나의 삶은, 날 것 그대로의 나의 삶은, 여전히 대상일 뿐이다. 그들이 포착하고 왜곡해서 전달해줄 때, 그들의 언어로는 객관화해서 보도할 때 비로소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을 객관화하면서 언제나 임의의 탈락 그리고 왜곡이 발생한다. 우리 삶은 기사의 진술에 하나의 멘트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추락할 때에만 의미를 부여받는다.

네트와 블로그

블로그의 등장은 언론의 해체를 예비한다. (혹은 예비했었다.) 아무나의 시시한 일상들이 네트에서 드러나고, 작지만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관계를 형성할 때, 우리는 언론을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삶을 드러내기, 관계 안에서 삶을 만들어가기, 말하기, 듣기, 침투, 반응 등등. 공간과 시간을 떠나 새로운 차원 혹은 존재들의 장field이 형성된다. 새로운 차원, 존재의 장, 네트는 딱딱하게 고정되어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새로운 노드들이 접속할 때 마다, 노드들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거나 해체할 때마다, 관계들의 배치가 상이해질 때마다 함께 변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전체로 환원되지 않는 총합, 혹은 연결들의 조합, 연결들과 연결들, 끊임없는 그리고들.

언론의 대안이 아니라 언론의 해체로서, 삶들의 연결과 생산으로서,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능력을 훌륭하게 잠재하고 있었던 블로그가 점점 언론에 포섭되어 가는 듯하다. 많은 블로거들은 스스로를 “블로거 저널리즘, 1인 미디어 블로그, 블로거기자”라고 부르고 있고, 그러한 경향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언론이 되어가고 있는 블로그로 자신의 삶을 드러내기보다 혹은 어떤 삶을 형성하기보다, 다른 삶들을 대리하여, 언론이 했던 것처럼 그것들을 추출하고 객관화하여 전달한다. 혹은 자신의 삶조차도 객관화한다. 일종의 메타-데이터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언론의 해체, 그리고 삶들의 직접적인 연결로 귀결되지 못하고, 언론-권력을 코스프레하면서 그것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스스로를 혹은 우리 모두를 주인공에서 대상으로 침잠시킨다. (또 자본에의 포섭이라는 경향도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대안언론의 존재와 블로그의 이러한 역할이 전혀 의미가 없는지는 좀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하지만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안상태 기자, 난~

개콘의 새로운 유행어, 안상태 기자의 “난~ 할 뿐이고”는 언론의 속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개그이다. 안상태 기자는 언제나 사건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전달을 시작한다. 어느 순간, 그는 사건의 한 가운데 위치하게 되고, 즉 사건의 당사자가 되고, 더 이상 제 3자가 아니라 주인공의 입장에서 말하기 시작한다. “난~”이라고 하자마자 기사는 어색해지고, 언론이 해체된다. 거기에서부터 웃음이 시작된다. “난~”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대리하여 보고 대리하여 말하는 자, 언론-권력이 아니다. 또 필요에 의해 정향된 맥락 속에 멘트 혹은 자료화면 정도로밖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렇게라도 사회적 울림을 주기 위해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이고 무능력한 대상이 아니다. “난~”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주인공이 된다.

2008년을 달구었던 촛불시위도 우리 모두가 미디어와 함께 주인공이었던 시즌이 아닐까?! 내가 들고 있는 핸드폰, 카메라, 노트북 등이 그 자리에서 미디어가 되고, 날 것 그대로의 사건을 드러낼 때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으로써 나는 말한다. 동시에 우리가 말한다. 우리가 보고 말하는 능력을 스스로 되찾을 때 언론-권력은 기껏해야 기생밖에 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한 가지 분명해졌다. 능력을 되찾는 것은 우리의 역량이다. 누군가의 수혜가 아닌. (여기서 미디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미디어가 무엇인지는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 상당히 모호한 녀석인 것 같다.)

이제 우리도 안상태 기자가 그랬던 것처럼, 또 촛불시위 때 우리 스스로 경험했던 것처럼 주인공으로서의 우리의 위치, 보고 말하고 결정하는 우리의 능력을 되찾아야하지 않을까? 대신 보고 대신 말하고 대신 결정하는 자들의 방문을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그러한 메커니즘을 코스프레하면서 다시 또 슬픔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보고 말하고 결정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능력을 잠재하고 있다.

From → 깊은생각

7 Comments
  1. 컹, su님께서 쓰신 이 글을 인상깊게 읽어서리 민노씨 글에 댓글로 링크도 남겼는디 마침 그 위에 댓글을 다셨더군요.

    “난”이란 거이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 건디 요즘은 컨텐츠란 미명하에 이 “난”이란 것을 아마추어적이라고 배격하며 기존에 유통되었던 심심한 글로 따라가고 있는 듯싶어서 아숩구만요.

  2. 아하핫, 덧글이 없어서 나만 아쉬운 줄 알았는데 인상깊게 읽어주셨다니 따뜻해지네요. 민노씨님 글 읽으면서도 따뜻해져서 냉큼 트랙백 남겼드랬죠. 이렇게 생각이 연결되다보면 어느 순간 증폭되고 공명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3. 저도 재밌게 읽었고요. 안상태 기자는 모르지만요.^^
    그리고 저도 너바나나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안녕하세요. 민노씨네에서 링크 타고온 누에라고합니다.

  4. 누에님, 반가워요! :) 닉네임과 도메인이 참 멋지구리하구만요. 종종 놀러갈께요~

  5. 이제야 트랙백을 쏩니다. ^ ^;
    저에게 엮어주신 대상글 말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좀더 엮을만한 글을 트랙백으로 쏩니다… 그 글 본문 링크 보충하느라(그러니 게으름 때문에) 좀더 늦어졌네요…;;; (네, 변명입니당. ㅎㅎ)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 )

  6. 트랙백이 안 보여서 한참을 찾아봤더니 스팸으로 처리되어있었다는 -_- 저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블로거뉴스에는 통 무관심하게 지냈었는데, 본문에 링크되어있는 글들도 시간내서 읽어봐야겠네요.

Trackbacks & Pingbacks

  1. 민노씨.네

Leave a Reply

Note: XHTML is allowed. Your email address will never be published.

Subscribe to this comment feed via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