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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 10

표현한다는 것의 의미

by moya

지금 거실에서는 드로잉 세미나가 한창이다. 누구는 사람을 그리고, 누구는 사건을 그리고, 누구는 사물을 그리고 있다. 사실 나도 몇 번 참여했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도무지 용기가 안 난다. 사실은 일요일 푸코 세미나 때문에 책도 좀 읽어야하고, 그래서 자체휴강. 아무튼 첫 시간 종이와 펜이 주어졌을 때, 그 생소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물을 보고,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어쩌면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치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우리는 얼마나 표현하면서 살고 있을까?

5월 1일 두리반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때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박스와 깃발에 적어 자전거에 매달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이 질문이, 표현의 첫 단계인 것 같다. 다소간 머리 아프고 어려운 순간. 그러나 막상 짧은 문장을 정하고, 매직으로 써내려가자 누군가는 이 말을 보겠지 하는 기대에 신이 나기 시작한다. 박스를 어깨에 걸고, 소월길을 달리는데, 차를 타고 가던 어떤 분이 창문을 열고 “화이팅!”을 외쳐주신다. 온라인으로 치면 댓글이라도 달린 것일까? 아무튼 기분이 좋았다. 두리반에서는 우리처럼 몸피켓을 하고 온 사람이 없어서 가자마자 카메라에 둘러쌓이게 되었다. 그렇게 인터뷰도 하고, 덕분에 여기저기 사진도 남았다.

모든땅을 공유지로!<두리반에서 찍힌 사진, 나는 아니고 같이 갔던 친구>

이 표현─행위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매번 새롭게 완성된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라는 질문은 사실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표현은 나로부터 떨어져나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무게가 온전히 실려있는 것이며, 받아들이는 이에게 그만큼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니체님은 폭력이라고 말하겠지. 표현은 서로에 대한 폭력이다. 나는 너에게 폭력이다.

오늘은 ‘비공식불디자인서울‘이라는 캠페인을 알게되었다. 완전 킹왕짱 멋진 프로젝트.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도배를 해 놓는 그 “서울이 좋아요” 포스터에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스티커로 만들어서 게릴라처럼 붙이고 다니는 프로젝트이다. 서울인구의 1%인 10만 4,641장의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목표다. 스티커 문구는? 트위터나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제안할 수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 붙어있는 서울 시민의 표현들 by ilikeseoul>

붙인 스티커는 그 때 그 때 GPS 위치정보가 기록되는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공개된다. 그러므로 스티커가 어디에 어떻게 붙어있는지 구글맵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 캠페인은 책자와 다큐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후원과 함께 문구를 신청하면 당신의 문구를 표지로 하는 사진집을 받아볼 수 있다. 물론, 가장 간단한 후원은 사이트에 자주 방문하면서 트위터 등으로 입소문을 내는 것!

이 프로젝트를 보면서 정말 멋진 표현─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포스팅도 쓰고 있고. 표현, 표현한다는 것, 질문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이런 나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 :) 근데 드로잉 세미나 자체휴강하고 이러고 있다. 다음부터 열심히 해야지!

Apr 19 10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by moya

닥치고 참여했다. 내용도 좋고 문장도 좋다. 우리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그 이윤─우리의 삶을 이제 내려놓으라!! 역수탈을 시작하자! ㅋㅋ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성장주의 체제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과시적 통치 뿐이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외환위기와 금융자본주의의 과도기를 지나며 저마다 상표가 붙여졌고, 모든 공기업은 공공성이 아닌 매출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개인의 주거권, 사회권, 참정권은 물론이고 목숨 그 자체마저도 손익률에 기준해 평가되는 지금, 모든 도시민 역시 성장연합의 상업적 소유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마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탈당하는 것은 현재와 과거 뿐만이 아니다. 고작 1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금융채무자라는 굴레를 덮어썼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빠르게 수탈당하고 있다. 아비규환의 땅 위에서 정권은 이 나라가 선진국의 국격을 이룩했다며 축배를 들고,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가당치 않게도 민주공화국이란 상표로 포장된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모두는 오로지 자산이고, 자원이며, 상품일 뿐이다.

생계를 잇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쌓여가는데도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더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파업하지 말고, 투쟁하지 말고,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말고, 눈을 낮추고, 일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할 자리도 없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은 게으른 부모에겐 복지를 제한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하지 않은 자를 죄인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붙이고 있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

봉쇄된 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배제된 인격에게는 등가교환의 시장적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있는 자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난해 정권에 의해 단행된 이건희의 단독특별사면은 만인이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역사에 각인했다. 만민의 자유를 탈취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자유주의라는 기만적 명분을 휘장 삼아 두른다. 그 휘장 아래에서 빈민의 자유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상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통제당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지배할 자유이며, 착취할 자유이고, 수탈할 자유다. 피지배자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통제당하는 그들만의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그 어떤 누구도 법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이, 사회의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법의 주인, 국가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기에.

공화적 자유는 타인의 지배와 간섭 위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의 오랜 역사가 이를 실증해 왔고, 오늘날 정권이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에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난입한 경찰과 용역들은 지배자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맞서 싸운 구사대는 자본가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침략전쟁에 나선 파병군인들은 관료들이었던가? 아니다. 모두가 빈민, 부자유한 자, 그리고 노동자였다. 상처를 주는 역할도, 상처를 받는 역할도 부자유한 자들의 몫이다. 부자유한 우리는 점점 더 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 아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일 뿐이다.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들에게 지배와 간섭은 일상이다.

수탈당한 자유와 권리는 구걸로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흥정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시당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수탈당한 우리가 흥정할 자산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수탈당한 모든 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역수탈 뿐이다. 이윤으로 전환된 모든 개인의 삶, 기여 없이 증식하는 자본가치, 이 모든 것은 보편적 개인이 돌려받아야 한다. 모든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강제적 환수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제반요건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유는 오직 ‘탈취의 부자유’ 뿐이다. 오직 우리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1조는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이며,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실질적 자유를 가지는 나라이다. 국민주권은 국민 모두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인 기본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충분한 복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적 토대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노동이나 자산, 가족관계나 그 어떤 것도 민주공화국의 복지를 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억류된 자유를 해방하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

2010년 4월 16일

김슷캇 김우재 언럭키즈 신희철 Sid 발칙한 nxtw 이승환 kirrie aleph_k 박총 imc84 Carrot 여백 malesti leopord audtn 프리스티 tzxi 시퍼렁어 화절령 사유 상치군 ou_topia frozenfire 환자 민주노동당이상규 아마르고 태경 마로 f.y. 저련 말코비치 Graco 토끼뿔 베쓰볼키드 클라시커 꽃돌 인디^^ 몽구리 최승현 박세증 철민 조영권 향희 영배 나마스 moya 파애 laystall 병찬 공현 Letteriphile 라흐쉬나 광백이 종섭. 단편선 snowall blus 사무아

2010년 4월 19일

pheeree 혜정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성장주의 체제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과시적 통치 뿐이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외환위기와 금융자본주의의 과도기를 지나며 저마다 상표가 붙여졌고, 모든 공기업은 공공성이 아닌 매출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개인의 주거권, 사회권, 참정권은 물론이고 목숨 그 자체마저도 손익률에 기준해 평가되는 지금, 모든 도시민 역시 성장연합의 상업적 소유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마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탈당하는 것은 현재와 과거 뿐만이 아니다. 고작 1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금융채무자라는 굴레를 덮어썼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빠르게 수탈당하고 있다. 아비규환의 땅 위에서 정권은 이 나라가 선진국의 국격을 이룩했다며 축배를 들고,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가당치 않게도 민주공화국이란 상표로 포장된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모두는 오로지 자산이고, 자원이며, 상품일 뿐이다.

생계를 잇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쌓여가는데도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더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파업하지 말고, 투쟁하지 말고,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말고, 눈을 낮추고, 일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할 자리도 없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은 게으른 부모에겐 복지를 제한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하지 않은 자를 죄인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붙이고 있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

봉쇄된 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배제된 인격에게는 등가교환의 시장적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있는 자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난해 정권에 의해 단행된 이건희의 단독특별사면은 만인이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역사에 각인했다. 만민의 자유를 탈취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자유주의라는 기만적 명분을 휘장 삼아 두른다. 그 휘장 아래에서 빈민의 자유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상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통제당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지배할 자유이며, 착취할 자유이고, 수탈할 자유다. 피지배자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통제당하는 그들만의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그 어떤 누구도 법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이, 사회의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법의 주인, 국가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기에.

공화적 자유는 타인의 지배와 간섭 위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의 오랜 역사가 이를 실증해 왔고, 오늘날 정권이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에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난입한 경찰과 용역들은 지배자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맞서 싸운 구사대는 자본가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침략전쟁에 나선 파병군인들은 관료들이었던가? 아니다. 모두가 빈민, 부자유한 자, 그리고 노동자였다. 상처를 주는 역할도, 상처를 받는 역할도 부자유한 자들의 몫이다. 부자유한 우리는 점점 더 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 아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일 뿐이다.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들에게 지배와 간섭은 일상이다.

수탈당한 자유와 권리는 구걸로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흥정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시당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수탈당한 우리가 흥정할 자산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수탈당한 모든 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역수탈 뿐이다. 이윤으로 전환된 모든 개인의 삶, 기여 없이 증식하는 자본가치, 이 모든 것은 보편적 개인이 돌려받아야 한다. 모든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강제적 환수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제반요건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유는 오직 ‘탈취의 부자유’ 뿐이다. 오직 우리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1조는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이며,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실질적 자유를 가지는 나라이다. 국민주권은 국민 모두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인 기본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충분한 복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적 토대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노동이나 자산, 가족관계나 그 어떤 것도 민주공화국의 복지를 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억류된 자유를 해방하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

2010년 4월 16일

김슷캇 김우재 언럭키즈 황 신희철 Sid 발칙한 nxtw 이승환 kirrie aleph_k 박총 imc84 Carrot 여백 malesti leopord audtn 프리스티 tzxi 시퍼렁어 화절령 사유 상치군 ou_topia frozenfire 환자 민주노동당이상규 아마르고 태경 마로 f.y. 저련 말코비치 Graco 토끼뿔 베쓰볼키드 클라시커 꽃돌 인디^^ 몽구리 최승현 박세증 철민 조영권 향희 영배 나마스 moya 파애 laystall 병찬 공현

Apr 14 10

300만원짜리 인권

by moya

대학생 7명이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이유로 학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300만원. (기사링크) 학교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학교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 학생들의 인적사항을 파악 · 관리해왔고, 그 정보들이 담긴 문서를 학교직원이 버려서 쓰레기통에 나뒹굴다가 총학에서 발견. 문서에는 주민번호 · 보호자 정보 · 학적부 등 의 개인정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인권침해─나는 이 말을 좀 싫어한다.

‘침해’라니, 마치 인권이란 자명한 것이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만드는 말. 그래서 지금을 뭔가 결핍된 상태로 만들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운동으로 만들어버리는 말. 인권은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한 번도 없었던 것일텐데─인권이 침해당했다고 인권단체가 와서 조사하고 싸워서 회복시켜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 없는 사람 스스로 외치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회복의 ‘기술’이 아니라, 창조의 ‘정치’.

또, ‘인권침해’라고 말을 접합으로써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그래서 당사자들이 어떤 감정의 골을 지나왔는지, 지금은 어떤 상황인 것인지, ‘인권침해’라는 말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사람人에 대한 말이면서, 정작 사람은 들어있지 않은 말. 모든 사건은 다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나온 사람들도 모두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을텐데, ‘인권침해’라는 말은 그들 모두를 대충 같은 것으로 만든다. 누구에게나 입힐 수 있는 헐렁한 옷 같은 느낌.

되돌아보면, 현장에서는, 사건의 중심에서는, 아무도 ‘인권침해’라고 말을 시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언제나 뒤늦게 온 사람들이 헐랑한 옷을 입히고 싶을 때, ‘인권침해’라는 말로 포장할 뿐이다. 실제로는 그것이 지시하는 바가 별로 없으니, 언제나 ‘심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아무튼, 오늘은 대학생 7명이 자신들이 당한 인권침해가 3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헐렁한 옷에 사이즈라도 달아주고자 했던 것일까? 그들이 당한 “인권침해”와 “심한 정신적인 고통”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사실 알기가 더 어려워졌고), 아무튼 그것이 대략 3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은 오늘 인상에 남았다.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건 이 싸움은 시작부터 진 싸움이다. 파업을 한 노동조합을 업무방해라고 고소하는 기업이나,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개인을 대상으로 소송을 거는 국가나, 촛불집회를 한 시민들에게 광장의 잔디를 손상시켰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서울시나,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학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학생이나, 다 똑같다. 모든 것이 법과 개인, 그리고 비용으로 환산되는 시대. 저항은 이 시대에 균열을 내는 것이지, 이 시대 위에서 ─그것을 공고히 하면서─  똑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이 싸움은 시작하면서 진거다.

Apr 8 10

작업일지

by moya

작업목표는 svn과 trac 설치하기. 여러 사람이 함께 웹개발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주는 도구들이다. 근데 이거 두 개 설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이것저것 많다. 또 이 두 녀석과 웹서버apache를 연동하는데 필요한 것도 이것저것 많다. 아무튼 두 개 각각은 금방 설치했지만, 웹을 통해 두 개가 연결되지 않아서 여러날을 고생했다.

우선 버전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필요한 모듈들을 모두 최신버전으로 다운받아 다시 깔았다. 오랜만에 컴파일러시. 아무튼 마지막까지 문제였던 것은 apache와 python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서버centOS에는 python2.4가 설치되어 있었고, 내가 새로 설치한 것은 python2.6. python2.6에 맞게 apache와 python을 연결해주는 mod_python을 백번 다시 설치했지만, apache는 나 몰라라 python2.4만을 호출했다.

아무튼 이렇게 첫날밤이 가고, 둘째날도 지나고.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삼일 밤낮을 밥과 똥도 마다하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까만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마무리하지 못한 작업, 특히 어떻게 마무리해야하는지 얼마나 걸릴지 알지 못하는 작업이 있으니, 똥 싸고 뒷물 안한 사람처럼 불안불안하다. 피곤이 몰려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짜증내고. 살면서 이런 상황은 꽤나 있을텐데, 이런 ‘나’는 문제가 있다.(계속 이런 식으면 나는 빨리 늙어갈 것이야) 좀 더 여유로운 자세가 필요해.

아무튼, 백만번의 구글링 끝에(그만큼의 전기를 소비한 끝에) 발견한 기적같은 한 마디: make clean! mod_python을 다시 설치할 때, 전에 만들어진 make 파일들이 남아있어서 무언가 설치 안되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청소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재설치하기 전에 청소make clean를 한 번 해주었더니, 기적같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다. svn과 trac과 python과 apache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늘은 마음 편하게 퇴근해서 디온이 차려주는 시골밥상(잡곡밥+시금치된장국+콩나물들깨가루무침+버섯양파볶음 등)을 맛나게 먹고, 다시 그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설거지를 한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았다. 누가 위와 같은 고생을, 고생으로 이해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주저리주저리 내뱉고 싶은 마음에 여기 블로그에까지 들어왔다. (이제 좀 속이 시원) 더불어서 누군가 같은 고생을 눈 앞에 두고 있다면, 구글링을 백만번 하지 않고, 여기 기록된 팁(청소를 하라!)이 빠른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더해서.. 작업일지를 남긴다.

Mar 30 10

시간부족

by moya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균열된 시간없이 언제나 ‘할 일’들의 연속. 덕분에 블로그도 트윗도 소홀해지고. 청소하는 것도 빨래하는 것도 소홀해진다. 이렇게 사는 것이 좀 싫다. 무간엇보다 나를 되돌아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울을 꺼내들어 나를 비추어보는 시간. 나와 주변의 것들을 챙길 수 있는 시간. 자기배려의 시간.

무엇을 해야할지,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 일단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을 찾고 싶어서. 근데 어쩌면 공부 자체가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당장은 그냥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 것도 아닌 시간. 시간이 아닌 시간. 시간에서 어긋난 시간.

지금은 약간 시간이 생겼다. 짝꿍과 함께 집을 나서려고 그녀가 씻는 동안을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이것저것 하고, 포스팅도 하는 셈이다. 생각지 못했던 시간.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이 작은 시간으로 하루가 즐겁고 여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간을 선물해준 짝꿍에게 감사!